살인에는 흔적이 남는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하늘도
속였다고 자신할 만큼 감쪽같이 저지른 살인일지라도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
흥분하기 때문이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성격을 지녔어도 살인을 하는 순간에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살인할 때 머리끝까지 치솟는 흥분은 매우 독특하다. 미움, 원한, 증오가
한꺼번에 버무려져 살인을 시작하기도 전에 손과 발을 떨리게 만든다.
사람을 죽이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상대는 이미 불구대천지수다.
그것은 다시 말해 같은 하늘을 지고 살 수 없을 만큼 증오가 크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던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니 아무리 냉철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를 죽이는 순간 마음은 쾌락으로 바뀐다. 원한은 통쾌함으로, 증오는
희열로 바뀐다.
그러한 희열은 세상의 그 어떤 쾌락보다도 강력하게 신경을 마비시킨다.
흔적은 거기서 나오게 된다.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웠고, 완벽하게 행동했다 할지라도.
살수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죽일 사람에게 아무런 증오나 원한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냉정해질
수 있다.
살수에게 표적이란 생명이 없는 나무토막과 진배없다.
그가 왜 죽어야 하는지, 과연 죽을 만한 죄를 지었는지,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그와 관계된 모든 것을 알 필요가 없다.
그와 인연이 있는 것도,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단지 칼을 쑤셔 넣을 나무토막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