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 章
명(明) 홍무(洪武)8년, 강서성(江西省) 구강(九江) 백상촌(百桑村).
비록 형식적이었지만 투항을 권유하기는 했었다. 돌아온 것은 화살 끝에 매
달린 누런 마포 조각뿐.
마포를 풀었다. 그 안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붉은 네 글자, '결사항전(決死
抗戰)'이 전부였다.
사내는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인적 하나 보이지 않는 작은 마을을 바라보
았다. 그리고는 손을 들었다가 마을을 향해 뻗었다.
펑! 펑! 펑!
요란한 대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쥐죽은듯이 고요하기만 하던 마을 구석구
석에서 신음소리와 절규가 터져 나왔다. 초가들은 무너졌으며 불길이 치솟
아 올랐다. 견고한 성벽마저 허문다는 화포 수십 문이 일제히 불을 토해내
는데 한낱 황토와 짚으로 지어진 초가들이 어찌 버텨낼 수 있을까.
화탄(火彈)이 만든 먼지가 피어오르는 와중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마을 중
앙의 공터로 튀어나왔다. 대부분이 농기구와 어설픈 병장기를 들고 나온 중
년인들이었으나 거의 벌거벗다시피 한 어린아이들도 울부짖으며 엄마를 찾
고 있었고, 사지(四肢) 가운데 하나 혹은 둘을 잃은 여인네들과 노인들이
그 아이들을 향해 소리치며 기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순간 화포가 터트리던
굉음 소리가 잦아들고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