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아는 요즘 하루 여섯 시진 이상 잠을 잡니다.
일초반식(一招半式)의 무공도 익히려 하지 않고 책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씻는 것마저 귀찮아하여 언제나 부스스한 머리에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다
닙니다.
저희 부부는 막내아들인 봉아가 점점 쓸모 없는 인간이 되어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큰소리로 꾸짖지 못하고 좋은 말로 타일러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에 이른 것 같습니다.
봉아는 이제 부모의 말조차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명문정파(名門正派)의 칼날 같은 규율 속에서 엄한 사부의 가르침을 받게된
다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희 부부의 마지막 기대입니다.
어르신께서는 부디 봉아가 쓸모 없다 내쫓지 마시고, 호아에게 베풀었던 높으신 가
르침을 다시 한 번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부부는 봉아가 매일 궂은 일만하고 구타를 당한다하여도 눈과 귀를 막고 못 본
체 하겠습니다.
봉아가 화산(華山)의 귀신이 되어도 어르신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십 년 혹은 이십 년 후에라도 봉아가 제 앞가림을 할 정도만 된다면 저희 부부
는 어르신의 은혜에 혼신의 힘을 다해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저희 부부의 희망을 저버리지 마시기를 간곡히 비옵니다.
그럼 어르신의 낙도(樂道)가 영원하시기를 기원하며……
초춘가절(初春佳節) 벽악장(碧岳莊)에서
악중삼(岳仲杉) 부부(夫婦) 배상(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