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공기.
흐린 불빛.
차가운 석판에 무릎 꿇은 땅딸막한 화상(和尙)의 힘없이 늘어진 어깨,
벌거벗은 머리가 초라하다.
창노한, 그러나 가차없는 음성이 석실을 흔들었다.
“수행사미(修行沙彌) 법현(法玄)!”
아니다!
어제의 수행사미 법현은 이제 없었다.
여기 남은 것은 살인자(殺人者), 반도(反徒)일 뿐이다.
“범불살생계(犯不殺生械)!”
팍--!
화상의 앞에서 목탁이 깨어져 흩어졌다.
그날, 그의 수평으로 휘둘러진 팔꿈치에 만진(萬進)
사숙(師叔)의 머리가 저렇게 부서져 흩어졌었다.
붉은 피가 눈앞을 물들이고, 회색의 뇌수가 허공에 뿌려졌다.
수유(須臾)가 억만겁(億萬劫)이 되어 버렸을까?
만진의 머리는 그렇게 법현의 눈앞에서 서서히 분해되었었다.
법현은 그 골편(骨片) 한 조각 한 조각을 셀 수도 있었다.
허공에 찬연히 흩어지는 그 핏방울을 한 방울 한 방울 셀 수도 있었다.
경악에 부릅떠진 두 눈으로…….
“범조사모독(犯祖師冒瀆)!”
땡--그러--엉--!
바리가 뒹굴었다.
그렇게 개처럼 끌려가 나뒹굴어진 차가운 토굴에서 법현은 비탄(悲嘆)과
회오(悔悟)로 사흘을 지새웠다.
살의(殺意)는 없었다.
대련을 먼저 하자고 한 것도 만진 사숙이었다.
만자(萬字) 항렬에서도 고수로 꼽히는 만진 사숙이 그렇게 어이없이
당할 줄은 법현 자신도 몰랐었다.
더구나…… 그렇게 일격(一擊)에 죽어 버릴 줄은……!
격하게 들어오는 질문 속에서 한마디 대답 없던 그를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묻는 말에 그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내려질 결정은 단 하나였다.
“파문(破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