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무엇입니까?"
청년의 목소리가 부르르 떨렸다. 흐릿한 어둠 속에 앉아 있던 대머리 장년인은
청년이 내민 책자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어둠 속에서도 붉게 번들거리는
청년의 두 눈을 바라보다가 결국 눈을 감았다.
잠깐 동안의 침묵도 없이 청년이 울부짖듯이 소리쳤다.
"말씀해주십시오. 이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사부님?"
장년인은 눈을 뜨지 않았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태산을 올려놓은 듯
입술을 꾹 다물고 있을 따름이었다.
청년은 장년인의 앞까지 기듯이 다가가 그의 코앞에 책자를 내밀었다. 그리고
피를 토하는 듯한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분명 여기 '운보에게'라고 적혀있습니다. '죄 많은 아비가'라고 적혀 있습니다.
운보는 이 제자의 아명, 제자가 제 자신을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기억입니다.
말씀해주십시오. 제발!"
청년은 꿈쩍도 하지 않는 장년인의 무릎에 자신의 머리를 갖다대고 흐느꼈다.
운보... 운보... 운보...
입을 벌려 말하지 못했을 것 같던 어리고 어렸던 시절, 꿈속에서 들리는 듯한
부드럽고도 아련한 목소리가 내뱉은 말들 가운데 유일하게 기억나는 그 단어,
운보. 지금은 나한이라 불리기에 한참 동안 잊고 있었던 그 이름, 운보. 그래서
눈으로 들은 그 단어는 지금 청년의 마음을 울렸고, 없다고 믿었던 아비라는
말을 글자로 보는 순간 청년은 가슴 가득 슬픔을 품었다. 거기에 더해진 책자
주위의 혈흔으로 여겨지는 얼룩들. 얼마나 꽉 움켜쥐었는지를 단숨에 알아차릴
만한 손자국들이었으니, 청년은 가슴을 쥐어뜯고만 싶었다.
장년인은 드디어 눈을 뜨고는 흐느끼는 청년의 뒷머리를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후!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왜 주저했단 말인가? 진작에 없애버려야 했을
것을... 전하지 않기로 작정했으면서 왜 남겨두었던가?'